[선임기자 칼럼] 공직사회발 영웅담이 그립다

입력 2016-09-07 17:59  

박기호 선임기자 겸 좋은일터연구소장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이어 한진해운 법정관리로 공무원들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복지부동’ 탓에 문제를 적기에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오죽하면 금융당국 수장이 “(한진해운 법정관리에서) 구조조정 원칙이 훼손된다면 그게 바로 제2의 변양호 신드롬”이라고 했을까. 훗날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현안을 처리하지 않는 변양호 신드롬이 한진해운 처리 과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복지부동 비난에 대한 항변이다.

첩첩산중에 처한 공직 사회

공직사회는 지금 ‘흑역사’를 쓰는 듯 비친다. 더 큰 문제는 공직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이다. 평소 친분 있는 공무원에게 작금의 상황을 묻자 “영혼 없는 존재들이 뭘 어떻게…”라며 말끝을 흐린다. 무기력증에 자기 비하까지 겹친 모양새다. 이런 상황이 가져올 결과는 뻔하다. 창의행정, 효율행정, 적극행정의 실종과 국민 불편, 그리고 국가경쟁력 저하다.

공무원들은 법(공무원법 68조)으로 신분을 보장받는다. 소신껏 일하라는 취지에서다. 그런 공무원들이 좌표를 잃고 헤매고 있다. 공무원들이 꺼내는 자아 상실의 이유는 여러 가지다. 자녀 교육 문제로 이사를 못 가 세종청사로 출퇴근하면서 몸은 지쳐가고, 정보와 기술이 몰려 있는 서울에서 떨어져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지방공무원이 됐다는 피해의식이 커진다. ‘세월호 사태’ 이후 상급자들이 정년 즈음까지 근무하면서 인사와 승진은 적체되고, 공무원연금 개혁에 복지부동 논란이 겹치면서 국민 시선은 따가워진다.

올해 10년을 맞은 고위공무원단 제도의 폐해도 거론된다. 이 제도는 관료사회의 폐쇄성과 부처 순혈주의의 폐단을 해소하기 위해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6년 7월 도입됐다. 이제 알 만한 이는 다 안다. 사실상 부처 장관이 인사권을 행사하던 고위공무원을 고위공무원단으로 묶어 놓음으로써 정권 교체기 ‘공무원 줄 세우기’의 방편으로 쓰이고 있음을 말이다.

새 정권의 공약과 중앙 부처의 기존 업무 방향이 어긋날 때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부처 업무 필요상 모 단체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다가 미운털이 박혀 한직으로 내몰리거나, 개혁 속도의 완급 조절을 거론했다가 호된 추궁을 받고 중앙 부처에서 지방자치단체로 호적을 파가는 수모를 당하거나…. 공무원들이 청사 복도에서 주고받는 얘기를 의미하는 ‘복도통신’ 가운데 상당수는 시간이 흘러 실제 사례가 됐다.

자기성찰로 존재감 되찾아야

공무원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9급·7급 공무원시험 경쟁률이 사상 최고를 이어가는 것을 철밥통의 매력만으로 보고 싶지 않다. 나랏일을 한다는 긍지를 갖게 하고, 그래서 도전해볼 만한 자리라는 공감대가 반영된 결과堅竪?하다.

서별관회의를 털어보겠다는 정치권의 청문회 공세는 공직사회의 복지부동을 확산시킬 게 분명하다. 확대 재생산된 현직 공무원들의 무기력증이 후배들에게 고스란히 옮아가는 상황은 생각하기 싫다.

공직사회가 좌표를 되찾으려면 고집스러움과 극기가 중요하다. 퇴근하는 장관을 엘리베이터 안까지 쫓아가 설득한 끝에 자신의 의견을 관철했다는 어떤 사무관의 영웅적 일화는 ‘화석이 된 공룡’이어선 안 된다. 공직사회의 영웅담이 어느 때보다 그리운 요즈음이다.

박기호 선임기자 겸 좋은일터연구소장 khpar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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